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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는 삼년 이상이나 바울의 사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져 번영하였으며 이 도시로부터 복음이 아시아 전역으로 유대인과 이방인들 가운데 전파되었다.
사도는 이제 얼마 동안 다른 지방의 선교 여행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었으나, 에베소의 사업을 위해서도 여전히 그가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그는 오순절 후까지 남아 있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곧 그의 출발을 재촉하는 한 사건이 일어났다.
매년 한 번씩 에베소에서는 여신 아데미를 영화롭게 하는 특별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 예식에는 그 도의 각 지방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였다. 이 절기 동안에 가장 장엄하고 화려한 축제들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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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제 시기는 새로 신앙에 입문한 자들에게는 시련의 때가 되었다. 두란노 서원에 모인 신자들의 무리는 축제의 합창에서 불협화음이 되었으며 그들에게 조롱과 비난과 모욕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바울의 전도는 이교 숭배에 현저한 타격을 주었고, 그 결과 거국적 축제에 참석하는 숫자와 예배자들의 열심은 눈에 띄게 하강하였다. 그 교훈의 영향은 실제로 회심한 자들의 범위를 넘어서 확대되었다. 공개적으로 새 교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많은 사람들도 이교의 신들에 대한 모든 신뢰심을 잃을 정도로 계몽되었다.
또한 다른 불만의 원인이 있었다. 에베소에서는 신전과 아데미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작은 감실(龕室-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과 우상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규모가 크고 이익이 많은 사업이 발달해 있었다. 이 사업에 재미를 보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이 감소되는 것을 알고 모두 연합하여 그 달갑지 않은 변화를 바울의 전도의 탓으로 돌렸다.
은감실의 생산자인 데메드리오는 그의 직공들을 불러 모으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이 말은 백성들의 자극적인 분노를 일으켰다. “저희가…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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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설의 소문은 신속히 퍼졌다. “온 성이 요란하”였다. 바울을 수색하였으나 그는 발견되지 아니하였다. 그의 형제들은 위험의 통고를 받자 그를 급히 거기서 떠나게 하였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도를 보호하도록 파송되었으니, 그가 순교자의 죽음을 죽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분노의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 폭도들은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가지고 이들과 함께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바울이 숨은 장소는 그리 멀지 아니하였고 그는 곧 그의 사랑하는 형제들의 위험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폭도들에게 말하고자 즉시 연극장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이 말”렸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백성들이 찾는 먹이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큰 해가 우려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도의 창백하고 근심어린 얼굴이 보이게 되면, 이것은 곧 폭도들의 최악의 분노를 유발하여 그의 생명을 구원할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가능성마저도 없게 될 것이었다.
바울은 여전히 군중 앞에서 진리를 옹호하고자 갈망하였으나 마침내 연극장에서 온 경고의 기별로 제지당하였다.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였다.
연극장의 소동은 계속 증가되었다.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다. 바울과 그의 동료 중 얼마가 히브리 혈통이란 사실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저희는 바울과 그의 사업에 동조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기를 갈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을 내세워 백성들 앞에 그 문제를 제시하였다. 택함을 받은 대변인은 그 세공업자의 한 사람인 구리 장색 알렉산더이었는데”(딤후 4:14), 그에 대하여 바울은 후에 자기에게 해를 많이 끼친 자라고 언급하였다. 알렉산더는 상당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는 백성들의 분노를 오로지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로 돌리기 위하여 그의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떠밀어 버리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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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극도의 피로에 지쳐 그들은 소동을 그쳤고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때 그 도시의 서기장이 군중의 주목을 끌었고 그의 직책 덕분에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백성들을 그들 자신들의 입장에서 대하였고 그런 소동을 일으킬 아무런 까닭도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들의 이성에 호소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 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고 하고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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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드리오는 그의 연설에서 “우리의 이 영업”에 “위험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의 참 원인과 또한 사업을 수행하는 사도들을 따라다닌 대부분의 박해의 원인을 나타낸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업자들은 복음의 가르침과 전파로 인하여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위태롭게 된 것을 알았다. 이교의 사제들과 직공들의 수입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가장 신랄하게 바울을 대적하였다.
서기장과 그 도시에서 명예로운 직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결정은 바울을 백성들 앞에 불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무죄한 자로 인정하였다. 이것은 오류와 미신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또 하나의 승리였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한 관원을 일으켜서 당신의 사도를 옹호하게 하시고 소동하는 폭도들을 제지하게 하셨다. 바울의 마음은 그의 생명이 보존되었고 에베소에서의 소동으로 그리스도교의 평판이 떨어지지 않은 데 대하여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충만하였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갔”다. 이 여행에 바울은 에베소의 충실한 두 형제 두기고와 드로비모를 동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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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수고는 종결되었다. 그 곳에서의 그의 목회는 끊임없는 수고와 많은 시련과 깊은 고뇌의 시절이었다. 그는 가가호호를 방문하거나 공개적으로 백성들을 가르쳤으며 많은 눈물로 그들에게 교훈하고 경고하였다. 바울은 끊임없이 유대인들의 반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대적하여 민중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이와 같이 반대를 대항하여 싸우며 지치지 않는 열성으로 복음 사업을 전진시키고 아직 신앙이 어린 교회의 이익을 보호하는 동안 바울은 모든 교회들을 위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가 세운 교회들 중 어떤 교회에서 들려오는 배도의 소식은 그를 매우 슬프게 하였다. 그는 그들을 위한 그의 노력이 헛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는 그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법들을 알았을 때, 그는 여러 날 밤을 잠자지 않고 기도로 지새우며 생각에 골몰하였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들의 상태에 도움이 요구될 때, 그는 교회들에게 책망과 권고와 권면과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 가운데서 사도는 자신의 시련에 관하여 자세히 언급하지는 아니하나,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그의 수고와 고통에 대하여 때때로 조금씩 암시한다. 매 맞음과 옥에 갇힘, 추위와 주림과 목마름, 육지와 바다의 위험, 도시에서와 광야에서의 위험,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 이 모든 것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참았다. 바울은 “비방”과 “후욕을 당하”였고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고 “답답한 일”과 “핍박을 당하”였고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하”였고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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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적인 반대의 폭풍우와 원수들의 부르짖음과 동지들의 저버림 가운데서 담대한 사도도 거의 낙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돌아보고 새로운 열심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전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보다 먼저 밟으신 피 묻은 길을 밟고 가는데 불과하였다. 그는 구주의 발아래서 그의 갑옷을 벗을 때까지 싸움에서 물러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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