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
바울은 많은 불가피한 일로 지체한 후, 마침내 과거에 매우 열심히 일한 곳이요 한동안 깊은 염려의 대상이었던 고린도에 도착하였다. 그는 초창기의 신자 중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여전히 최초로 복음의 빛을 그들에게 전한 사람으로서 사랑으로 대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제자들과 인사하고 그들의 성실과 열심의 증거를 보았을 때 그는 고린도에서의 그의 사업이 헛되지 아니하였음을 기뻐하였다.
한때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높은 부르심을 그처럼 쉬 잊어버릴 듯하던 고린도 신자들은 굳건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계발하였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의 변화시킨 능력을 나타내었고 그들은 이제 이교와 미신의 중심지에서 선을 위한 강한 군대가 되었다. 그의 사랑하는 동료들과 이 충실한 회심자들과의 교제에서 사도의 피로하고 혼란한 정신은 안식처를 찾았다.
-373-
고린도에 체류하는 동안 바울은 새롭고 넓은 봉사의 일터를 바라볼 시간을 얻었다. 특별히 로마로 여행하려는 의도가 그의 생각을 차지하였다. 알려진 세계의 대중심지에 그리스도교가 확고하게 세워지는 것을 보는 일이 그의 최대의 소망이요 가장 소중히 여겨 온 계획 중의 하나였다. 한 교회가 이미 로마에 세워졌으므로 사도는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야 할 사업에 그 곳 신자들의 협력을 얻고자 갈망하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에게는 생소한 이들 형제들 가운데서 일할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는 편지를 그들에게 보내어 로마를 방문하는 목적과 스페인에 십자가의 깃발을 세우고자 하는 소망을 알렸다.
바울은 로마인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 가운데서 복음의 대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들을 소란스럽게 하는 문제들에 대한 그의 입장을 진술하였으며 한때는 특별히 유대인에 속하였으나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제공된 소망과 약속들을 보여 주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매우 분명하고도 능력 있게 제시하였다. 그는 다른 교회들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교훈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으나, 그는 그의 말의 원대한 감화를 얼마나 희미하게 내다볼 수밖에 없었던가! 각 시대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대진리는 회개하는 죄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굳센 등대처럼 섰다. 루터의 마음을 싸고 있던 흑암을 흩어 버리고 그에게 죄를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나타낸 것은 바로 이 빛이었다. 동일한 빛은 죄짐을 진 무수한 영혼들을 용서와 평화의 참 근원으로 인도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374-
바울은 이 편지에서 유대인을 위한 그의 책임에 대하여 기탄없이 표현하였다. 그는 회개한 후 언제나 그의 유대인 형제들을 도와 복음 기별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게 하고자 갈망하였다. 바울은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고 선언하였다.
바울의 바라는 것은 평범한 소망이 아니었다. 그는 나사렛 예수를 약속된 메시야로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항상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신도들에게 확신 있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들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축복하시고자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많은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이 선지자들은 당신을 제일 먼저 약속된 메시야로 인정했어야 할 자들에게서 거절과 죽음을 당하실 구속주의 초림을 예언하였다.
-375-
선지자 이사야는 수 세기를 내다보고 선지자들이 차례로 거절을 당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이 거절당하는 것을 목격하고서, 전에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계수함을 받지 못했던 자들이 구속주를 받아들일 것에 관하여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다. 이 예언을 언급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비록 이스라엘은 당신의 아들을 거절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바울의 계속되는 논증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스라엘이 비틀거려 넘어졌으나 이것은 그들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없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라는 질문에 사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376-
당신의 은혜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였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들 가운데 분명히 개괄되어 있다. 사도는 그의 논증 가운데서 이 예언들의 얼마를 사용한다. 그는 묻기를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한다.
한 국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 만한 자들로서 상당히 많은 무리가 그들 중에 남아 있었다. 구주의 초림 때에 침례 요한의 기별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새로이 연구하게 된 충실한 남녀들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졌을 때, 이 교회는 나사렛 예수를 그들이 그의 강림을 갈망해 온 분으로 인정한 충실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바울이 편지할 때에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고 한 것은 이 남은 무리에게 한 말이다.
-377-
바울은 이스라엘의 남은 무리를 그 가지의 얼마가 부러진 고상한 감람나무에 비유한다. 그는 이방인을 원줄기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의 가지로 비유한다. 바울은 이방인 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스라엘은 자신들에 대한 하늘의 목적을 불신하고 거절하였으므로 한민족으로서의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줄기에서 떨어진 가지들을 이스라엘의 참줄기 곧 저희 조상의 하나님께 충성을 유지한 남은 무리와 다시 연합할 수 있게 하셨다. 사도는 이 꺾여진 가지들에 대하여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고 언명한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한다.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378-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379-
이같이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마음을 똑같이 변화시켜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넉넉히 허락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이사야의 선언을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성전이 황폐되었을 때 무수한 유대인들은 팔려가 이교의 나라에서 종이 되었다. 적막한 해안에서 조난을 당한 것처럼 그들은 열국 중에 흩어졌다. 일천팔백년 동안 유대인들은 온 세계의 이 나라 저 나라로 방황하였고 아무 곳에서도 그들은 한 민족으로서의 그들의 옛 명성을 다시 찾을 특권을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비방과 증오와 박해를 당하였으며 대대로 고통을 물려받았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거절하였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한 민족으로서 무서운 운명이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를 통하여 조용히 고통을 참은 고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유대인 남녀들이 존재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고통당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셨고 그들의 무서운 상태를 동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하여 전심으로 당신을 찾는 사람들의 고민의 기도를 들으셨다. 어떤 이들은 저희 조상들이 거절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비천한 나사렛 사람에게서 이스라엘의 참 메시야를 찾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나 유전과 그릇된 해석으로 매우 오랫동안 모호하였던 예언들의 의미를 알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모든 인간에게 베푸신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에 대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가득 찼다.
-380-
이사야가 그의 예언 중에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무리에 대한 것이다. 바울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으로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신다”고 바울은 부르짖었다. 사도는 자신을 유대인에게처럼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 “빚진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대인들이 소유한 결정적인 이점을 결코 무시하지 아니하였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었다.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그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등하게 유효한 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것이다.
이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충분히 제시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영접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목사들 가운데는 유대 백성을 위하여 수고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하나 때때로 돌보지 않고 버린 사람들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희망의 기별이 전달되어야 한다.
-381-
복음 기별의 마지막 선포에 있어서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계층의 백성들을 위하여 특별한 사업을 해야 하는 이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들이 세상 각처에서 발견되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하신다. 여호와의 영원한 목적을 설명함에 있어서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과 합할 때 이것은 많은 유대인에게 새로운 창조 곧 영혼의 부활의 아침처럼 될 것이다. 그들이 복음 시대의 그리스도가 구약 성경의 여러 페이지에 묘사된 것을 보고 신약 성경이 얼마나 분명하게 구약 성경을 설명하는지를 깨달을 때 그들의 잠자던 기능은 일깨움을 받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세계의 구주로 인정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속주로 영접할 것이다. 그들에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 1:12)다는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유대인 중에는 다소 사람 사울처럼 성경에 능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선포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다. 당신의 팔이 짧아 구원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종들이 오랫동안 버려두고 멸시하여 온 사람들을 위하여 믿음으로 수고할 때에 그분의 구원이 나타날 것이다.
-38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 자손은 나의 손으로 그 가운데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하며 야곱의 거룩한 자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 29:22~24).
NextPrev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