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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베뢰아에서 그가 가르친 진리를 즐겨 연구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에 대하여 누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니라.
베뢰아 사람의 마음은 편견으로 편협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한 교리가 진실한가를 즐겨 연구하였다. 그들은 호기심이 아니라 약속된 메시야에 관한 기록을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였다. 날마다 그들은 영감의 기록을 연구하였고, 그들이 성경말씀을 비교하여 연구할 때에 하늘 천사들은 그들 곁에 서서 그들의 지력을 계발시키고 그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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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진리가 선포되는 곳은 어디나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게 된다. 만일 지상 역사의 이 마지막 장면에서 시험하는 진리가 선포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이 베뢰아 사람의 모본을 따라,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고, 그들에게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의 기별을 비교하면서 연구할 것 같으면 오늘날 비교적 소수밖에 없는 곳에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에 충성하는 큰 무리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기가 없는 성경 진리가 계시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연구하기를 거절한다. 비록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논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제시된 증거를 연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어떤 이들은 이 교리들이 참으로 진리라고 믿지만 그것이 저희가 새로운 빛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데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원수가 영혼들을 곁길로 유혹하는 재미있는 우화에 매달린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오류로 눈멀게 되어 마침내 하늘에서 끊어지게 된다.
모든 사람은 받은 빛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대사들이 구원의 기별을 가지고 나가게 하시며 당신의 종들이 전한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그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성실하게 진리를 찾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서 그들에게 제시된 교리들을 주의 깊이 연구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사도들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가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추방시킨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베뢰아까지 그들을 따라와 쉽게 흥분하는 하류 계급의 사람들로 사도들을 대적하도록 자극하였다. 만일 바울이 거기에 머물 경우 그가 폭행당할 것을 두려워한 형제들이 그를 아덴으로 보냈는데 새롭게 신앙을 받아들인 몇몇 베뢰아 사람들도 그와 동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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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이 성읍, 저 성읍에서 진리의 교사들은 핍박을 당하였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복음 사업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었으나, 사도들의 사업을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데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반대와 투쟁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고, 예루살렘에서 본 이상 중에 나타난 계시와 같이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자 결심하였다.
바울이 베뢰아에서 급히 떠났으므로 그는 그가 고대한 데살로니가 형제들을 방문할 기회를 잃게 되었다.
아덴에 도착하자마자 바울은 베뢰아 형제들에게, 돌아가서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그에게로 보내라고 기별하고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디모데는 바울이 떠나기 직전에 베뢰아에 왔으며, 실라와 함께 그 곳에 남아서 훌륭하게 착수된 그 사업을 수행하였고, 새로운 개종자들을 신앙의 원칙을 가지고 교훈하였다.
아덴 성읍은 이교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바울은 루스드라와 같이 무지하고 잘 속는 민중이 아니라 지성과 교양이 매우 훌륭한 백성들을 만났다. 도처에 있는 그들 신의 형상과 신격화된 역사와 시(詩)의 영웅들의 조상(彫像)이 시선을 끌었고, 한편 장엄한 건축물과 그림들은 민족의 영광과 널리 성행하던 이교신의 숭배를 나타내었다. 백성들의 감각은 그 예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황홀해져 있었다. 사방에는 막대한 비용을 들인 사원들과 신전들이 크고 중후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전쟁의 승리와 고명한 사람들의 행위가 조각물, 사당 그리고 명판에 새겨져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아덴을 거대한 예술의 전당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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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주위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고, 또한 도시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보았을 때에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시는 것을 알고서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위한 질투심으로 분기되었고, 그들의 지적인 교양에도 불구하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덴 백성들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사도는 그 학문의 중심지에서 그가 본 것으로 인해 미혹되지 않았다. 그의 영성은 하늘의 사물의 매력, 곧 결코 쇠하지 아니할 풍성한 기쁨과 영광에 매우 생생히 집착되어 있었으므로, 주위의 장엄함과 화려함은 그의 눈에 아무 가치가 없게 보였다. 아덴의 장엄함을 보았을 때에 그는 예술과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힘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의 마음은 그의 앞에 있는 사업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이 큰 도시에서 바울은 고독감에 억눌려 그의 동역자들의 동정과 조력을 갈망하였다. 인간적인 우정에 있어서 바울 자신은 몹시 외로웠다.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그는 “우리만 아덴에 머물”(살전 3:1)러 있다는 말로 그의 감정을 표시하였다.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장애물들이 그의 목전에 나타나 백성들의 마음에 접근하려던 그의 시도는 거의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게으르지 아니하였다. 그는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 그러나 아덴에서의 바울의 주요한 사업은 하나님 그리고 타락한 인류를 위한 그분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별을 전하는 것이었다. 사도는 곧 가장 교활하고 유혹적인 형태의 이교 신앙과 대면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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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의 위대한 사람들은 오래지 아니하여 백성들 앞에 새롭고 이상한 교리를 제시하는 어떤 특이한 교사가 저희 도시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이 바울을 찾아와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곧 청중들의 무리가 그들 주위에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그 사도를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그들보다 아주 못한 사람이라고 조롱할 준비를 하고서 저희들끼리 조롱하는 말로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라고 하였다. 다른 이들은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한 까닭에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라고 말하였다.
저자에서 바울과 만난 사람들 중에는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있었으나, 그들도 그와 접촉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곧 바울이 자기들보다도 더 큰 지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지력은 학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한편 그의 열렬하고 논리적인 이론과 힘있는 웅변은 모든 청중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청중들은 그는 풋내기가 아니요, 그가 가르친 교리를 지지함에 있어서 그는 수긍시키는 논증을 가지고 각 계급의 사람을 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사도는 담대히 서서 그들의 땅에서 그의 반대자들을 대하였고 논리에는 논리로, 철학에는 철학으로, 웅변에는 웅변으로 대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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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 반대자들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 까닭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던 소크라테스의 운명에 그의 주목을 끌게 하였고, 그들은 같은 길을 따름으로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말도록 바울에게 권고하였다. 그러나 사도의 담화는 백성들의 주목을 끌었고 그의 꾸밈 없는 지혜는 그들의 존경과 경탄을 받았다. 철학자들은 학문이나 풍자로 바울을 침묵시킬 수가 없었다. 또한 바울이 만사를 내걸고 자기의 사명을 성취시키며 복음을 전할 결심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말을 공평하게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런고로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인도하였다. 이곳은 온 아덴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었으므로, 그 곳을 회상하고 연상하는 것은 결국 어떤 이들의 심중에 공포심을 일으켜 미신적인 경외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였다. 민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더욱 중요한 모든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 최종의 재판관으로서 일한 사람들이 종종 종교와 연관된 문제들을 주의 깊이 연구한 곳도 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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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운집한 대로의 소음과 혼잡, 그리고 시끄러운 토론의 소동에서 떨어진 이곳에서 사도는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말할 수 있었다. 사도의 주위에는 시인들과 화가들과 철학자들, 곧 아덴의 학자와 성자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였다.
이 엄숙한 책임의 시간에 사도는 평온하고 침착하였다. 그의 마음은 중대한 기별로 무거웠고, 따라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가 한가한 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청중들에게 확신시켰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들은 모든 지력과 총체적인 지식을 가지고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욱 큰 빛을 갈망하고 있는 어떤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한하신 분을 향하여 다가가고자하고 있었다.
바울은 우상이 가득 찬 신전을 향하여 손을 펼치고는, 그의 심령의 부담을 토로하면서 아덴 사람들의 종교상 오류를 폭로하였다. 그의 청중 가운데 가장 슬기로운 사람들도 그의 정연한 논리를 듣고 놀랐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의 예술 작품, 문학 그리고 종교에 정통함을 나타내었다. 그들의 조상(彫像)과 우상들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인간이 고안한 형상과 같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새긴 우상들은 아주 희미하게라도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 우상들은 아무 생명도 없고, 인간의 힘에 지배되어 사람의 손이 그것을 움직일 때에만 움직일 수 있는 고로 그것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그 우상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바울은 상기시켜 주었다.
바울은 우상 숭배자들인 청중들의 마음을, 거짓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 저희가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부른 그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견해를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바울이 지금 그들에게 선포한 그 존재는 사람에게서 독립하여 계시고, 능력과 영광을 더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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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참 하나님의 특성, 곧 그분의 창조력과 주관하시는 섭리에 대한 바울의 열렬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경탄하여 넋을 잃었다. 사도는 열렬하고 불일 듯한 웅변으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고 선언하였다. 하늘이라도 하나님이 계실 만큼 넉넉지 아니한데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들이야 얼마나 보잘것없겠는가.
종종 인간의 권리가, 인정을 받지 못하던 계급 제도가 있던 그 시대에 바울은 인간의 형제 관계에 관한 대진리를 제시하고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고 선언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만민은 평등하므로 모든 인간은 창조주에게 최고의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 후에 인류에게 대한 하나님의 모든 행동을 통하여 사도는 어떻게 그분의 은혜와 자비의 목적이 금실처럼 이어지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분은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들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시도다.”
그의 주위에 있는 인간성의 고상한 표본들을 지적하면서, 바울은 그들 자신의 시를 빌어 가지고 그들이 다 그의 자녀인 그 무한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묘사하였다.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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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초림 이전 어두운 시대에는 거룩한 통치자께서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묵과하셨으나 이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보내셨으므로, 가난하고 비천한 출신뿐만 아니라, 거만한 철학자와 지상의 군주들도 모두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기를 기대하셨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바울이 죽은 사람의 부활을 말하자,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도 하였다.
이리하여 이교 학문의 중심지 아덴에서 사도의 수고는 끝났는데, 이는 아덴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완고하게 매달려 참된 신앙의 빛에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업적에 자족하고 있을 때에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거의 없다. 학문과 고상함을 자랑함으로 아덴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더욱 부패하게 되었고 헛된 우상숭배의 신비들에 더욱 만족하였다.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제시된 진리를 저희 마음에 확신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구속의 경륜을 받아들일 만큼 자신을 낮추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웅변적인 말로도, 힘 있는 논증으로도 죄인을 회심시킬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마음에 진리를 적용시킬 수 있다. 이 능력으로부터 돌아서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거기에 이를 수가 없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하였으므로 십자가의 기별은 그들에게 어리석은 것이 되었는데 이는 저희가 자신들의 지혜를 하늘에서 온 지혜보다 더욱 귀하게 여긴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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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기별이 아덴인들 중에서 비교적 성공을 얻지 못한 이유를 지성과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는 그들의 교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련하고 잃어버린 죄인으로서 그리스도께 나오는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나 자신들의 지혜를 높이며 나오는 특출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빛과 지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은 그 시대의 이교주의에 대항하였다. 아덴에서의 그의 수고가 전혀 헛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저명한 시민의 한 사람인 디오누시오와 어떤 다른 사람들이 복음 기별을 받아들이고 신자들과 전적으로 연합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하여 교만하고 자족하는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죄악을 어떻게 책망하셨는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지식과 세련미와 예술에도 불구하고 악습에 빠졌던 아덴 사람들의 생애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영감을 우리에게 주셨다. 영감의 붓으로 기록된 사도의 말과 그의 태도와 그가 처했던 환경에 대한 묘사는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에 전달되어 고독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확신과 용기, 그리고 그가 이교의 심장부에서 기독교를 위하여 얻은 승리를 증거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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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말에는 교회를 위한 지식의 보배가 담겨 있다. 바울은 그의 말로 교만한 청중들의 분노를 일으켜 자신에게 어려움을 초래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만일 그의 설교가 직접적으로 그들의 신들과 그 도시의 위인들을 공격하였더라면 그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운명을 맞을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얻은 재치를 가지고 그는 그들이 알지 못한 참 하나님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이교의 신들로부터 돌아서게 하였다.
오늘날도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든지 죄악의 왕에게 충성하든지 선택하도록 그들 앞에 성경의 진리를 제시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복음, 즉 그들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지는 않으시는 그 진리를 그들 앞에 두신다. 만일 그들이 그것으로부터 돌아선다면 그분은 그들을 버려두시어 자신의 행위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18, 19, 27, 28).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가장 위대한 학자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세계의 가장 저명한 인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시대에 빛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계발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물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고백하고, 크신 교사 예수의 발아래 겸손히 배우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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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 계층에 접근하려는 모든 노력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한 일꾼은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겉보기에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듯이 보이나, 가장 어두운 때에도 위에는 빛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의 힘은 날로 새롭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실수하지 않도록 무한하신 분의 지혜가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이러한 일꾼들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우리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둠을 꿰뚫고 비칠 것임을 기억하는 가운데 그들이 처음에 가진바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게 하라. 하나님의 사업에 관한 한 낙담이란 있을 수가 없다. 헌신한 일꾼은 믿음으로 그 사업에 수반된 모든 시험을 견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과 그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요구되는 지혜를 주실 수 있으실 뿐더러 즐겨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그들의 최고의 기대 그 이상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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