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303-
25장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음
웃시야(아사랴로도 알려짐)의 오랜 통치 기간 동안에 유다와 베냐민 땅에는 거의 2세기 전 솔로몬이 죽은 후로 어느 다른 통치자가 다스리던 때보다 더 큰 번영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왕은 여러 해 동안 신중히 통치하였다. 왕의 군대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전에 잃어버렸던 영토들을 회복하였다. 도시들을 재건하고 방비를 굳게 하여 인근 민족들 중에서 국가의 위치를 크게 강화시켰다. 통상은 다시 활발해져서 열국의 부가 예루살렘으로 흘러들어왔다. 웃시야의 명성이 “원방에 퍼짐도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대하 26:15).
그러나 이 외적인 번영은 거기에 상응하는 영적 능력의 부흥이 수반되지 아니하였다. 성전 예배는 전처럼 계속되고 군중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기는 했으나 교만과 형식주의가 점차 겸손과 성실을 대신했다. 웃시야 자신에 대하여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대하 26:16)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304-
웃시야에게 매우 큰 재난의 결과를 가져온 죄는 참람의 죄였다. 아론의 후손 외에는 아무도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는 여호와의 분명한 명령을 어기고 왕은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하”였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그 동료들은 그가 의도하는 행위를 돌이키게 하려고 충고하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 26:16, 18)고 역설하였다.
웃시야는 왕인 자기가 이 같은 책망을 받은 데 대하여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웃시야는 권위를 가진 이들의 연합된 항의를 무시하고 성전을 더럽히지는 못하였다. 분노에 찬 반역에 대해 화를 내면서 거기에 서 있는 동안 그는 돌연히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다.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다. 그는 당황하여 도망하였고 결코 다시는 성전 마당에 들어올 수 없었다. 웃시야는 몇 년 후 그가 죽을 때까지 문둥병자가 되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는 명백한 말씀을 떠난 어리석음의 산 모본이 되었다. 그의 높은 지위와 그의 오랜 봉사의 생애도 그의 치세의 말년을 더럽히고 자신에게 하늘의 형벌을 초래한 참람된 죄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신다.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민 15:30).
-305-
웃시야에게 내린 형벌은 그 아들에게 자제하도록 감화를 끼친 것 같았다. 요담은 아비의 치세의 말년 동안에 중임을 맡았으며 웃시야의 사후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5:34, 35)는 요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웃시야의 통치가 거의 끝나가고 요담이 이미 많은 국사의 책임을 맡고 있을 때에 왕족인 이사야는 아직 청년이었으나 선지자의 임무에 부르심을 받았다. 이사야가 일하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위험이 따르고 있었다. 선지자는 북방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범하는 것을 목격해야 하였다. 그는 자기 나라의 중요한 도시들 앞에 진 친 앗수르 대군을 바라보아야 하였다. 그의 생존 시에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이스라엘 열 지파는 열국 중에 분산될 것이었다. 유다는 거듭거듭 앗수르 군대의 침략을 받을 것이었으며 예루살렘은 포위될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중재하지 않으셨다면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을 것이었다. 이미 큰 위험이 남방 왕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보호가 제거되고 있었으며 앗수르 군대는 유다 땅을 덮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외부에서 오는 위험이 비록 압도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 오는 위험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여호와의 종을 가장 큰 곤란과 가장 깊은 의기소침에 빠지게 한 것은 그의 백성들의 완고함이었다. 열국 중에 횃불을 든 자로 서야 할 그들이 배도와 반역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자청하고 있었다. 북방 왕조의 신속한 멸망을 촉진했고 최근 호세아와 아모스가 분명한 말로 탄핵했던 많은 죄악들이 유다 왕국을 신속히 부패시키고 있었다.
-306-
특별히 백성들의 사회적 상태에 관해서는 전도가 암담하였다. 사람들은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고 있었다(사 5:8 참조). 공의는 왜곡되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사 3:14, 15). 무력한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그의 의무인 재판관들까지도 불쌍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과부와 고아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사 10:1, 2).
억압과 풍부함과 함께 교만과 허식을 사랑하는 것과(사 2:11, 12, 3:16, 18~23 참조) 크게 술 취함과 경쟁의 정신이(사 5:22, 11, 12) 들어왔다. 이사야의 시대에는 우상숭배 자체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사 2:8, 9 참조). 불법적인 행위가 모든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매우 성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 충실한 적은 무리들은 용기를 잃고 낙담과 절망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가고 반역적인 민족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을 당할 것처럼 보였다.
이 같은 상태에 놓여 있던 웃시야의 통치 마지막 해에 이사야가 유다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의 기별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그가 그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완고한 저항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는 것을 깨닫고, 그가 위하여 일하려는 백성들의 완고함과 불신을 생각해 보았을 때에 그의 과업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절망 중에 그의 사업을 포기하고 유다로 하여금 여전히 우상숭배를 계속하도록 버려 둘 것인가? 니느웨의 신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을 지배하게 할 것인가?
-307-
이사야가 성전 주랑(柱廊) 아래 서 있을 때에 이와 같은 생각들이 그의 마음속에 몰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성전문과 안 휘장이 들렸거나 걷어치운 것처럼 보이며 선지자가 그의 발을 거기에 들여놓지 않았는데도 지성소 내부와 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앞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의 계시가 나타났고 한편으로는 당신의 영광의 수종자들이 성전에 충만하였다. 보좌 양편에 스랍들이 공중을 날며 경외심으로 저들의 얼굴을 가리웠다. 그들이 창조주 앞에서 섬기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연합하여 엄숙하게 기도할 때에 성전 기둥과 백향목 문이 그 소리로 인하여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 집은 그들의 찬사(讚辭)로 충만하였다.
이사야는 이러한 주의 영광과 위엄의 계시를 보았을 때에 하나님의 순결과 거룩하심을 깨닫고 감동을 받았다. 그의 창조주의 비할 데 없는 완전하심과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유다의 선민으로 헤아림을 받아 온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비교할 때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던가!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부르짖었다. 지성소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 서서 그는 만일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과 무능함을 그대로 버려둔다면 그는 전혀 부르심을 받은 사명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 스랍이 고통 중에 있는 그를 구원하고 그로 그의 큰 사명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제단에서 취한 타오르는 숯불을 그의 입술에 대며 말하기를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였다.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말하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였으며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7, 8)라고 응답하였다.
-308-
하늘의 방문자는 기다리는 사자에게 가서 이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명령하였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9, 10).
선지자의 임무는 분명하였으며 그는 음성을 높여 성행하는 죄악을 꾸짖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사야는 어떤 희망의 보증이 없이는 사업에 착수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묻기를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당신의 선민 중에 아무도 깨닫고 회개하고 고침을 받을 사람이 없나이까.” 하였다.
죄 많은 유다를 위한 그의 영혼의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의 사명이 전혀 결실이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세대 동안 증가되어 온 죄악들이 그의 시대에 제거될 수는 없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참을성 있고 용기 있는 교사 곧, 비운의 선지자인 동시에 희망의 선지자가 되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목적은 마침내 성취되고 그의 노력과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사자들의 모든 수고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날 것이다. 남은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경고와 호소의 기별이 반역한 민족에게 전하해야 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309-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1, 12).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릴 중한 형벌 곧 전쟁, 추방, 억압, 열국 중에서의 권력과 명성의 상실 등 이 모든 일들은 그 가운데서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북방 왕국 열 지파는 곧 열국 중에 분산되고 그들의 성읍들은 황폐될 것이다. 파멸을 자행하는 적국의 군대가 거듭거듭 저희 나라를 휩쓸 것이며 예루살렘까지도 마침내 함락되고 유다도 사로잡혀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의 땅은 영원히 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방문자는 이사야에게 보증하였다.
-310-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6:13).
하나님의 목적이 마침내 성취될 것이라는 이 같은 보증은 이사야의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세상의 권세들이 유다를 모두 반대한 들 어떠랴! 여호와의 사자가 반대와 저항을 당한들 어떠랴! 이사야는 만주의 주이신 왕을 보았고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는 스랍의 노래를 들었다. 타락한 유다에게 주신 여호와의 기별에 회개시키는 성령의 능력이 수반될 것이므로 이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사업을 행할 용기를 얻었다. 이사야는 힘들고도 긴 사명의 기간을 통하여 언제나 이 계시를 기억하였다. 그는 60년 이상이나 유다 자손들 앞에서 희망의 선지자로 서서 교회의 미래의 승리에 대해 점점 더 담대하게 예언하였다.
NextPrev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