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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집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열 지파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이전에 솔로몬의 신하였다. 그는 민정(民政)에 있어서나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슬기롭게 개혁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솔로몬의 통치 아래서 그는 능란한 솜씨와 건전한 판단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주었고 그가 여러 해 충실하게 봉사하는 동안에 얻은 지식은 그로 신중하게 통치할 수 있는 적임자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실패하였다.
여로보암의 가장 큰 염려는 장차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통치자에게로 쏠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일 열 지파로 하여금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대처럼 성전 봉사가 그대로 행해지고 있는 유다 왕국의 옛 터전을 방문하도록 허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중심을 둔 정부에 대해 그들의 충의를 새롭게 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여로보암은 그의 고문들과 상의한 후 대담한 수법을 써서라도 그의 통치에 대한 반란의 가능성을 줄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새로워진 나라 안에 두 개의 예배의 중심지를 벧엘과 단에 세움으로 이 일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열 지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대신에 이곳에 모이도록 청함을 받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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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기 위하여 여로보암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어떤 물체 곧 눈으로 볼 수 있는 조상(彫像)을 저희 앞에 세워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게 하여 그것들을 지정한 예배의 중심지에 세운 사당 안에 안치하였다. 하나님을 나타내려는 이 같은 노력으로 여로보암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 5)는 여호와의 명백한 명령을 범하였다.
열 지파를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여로보암은 자기 계획의 약점을 보지 못하였다. 여로보암은 저희 조상들이 수세기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중에 매우 익숙했던 우상을 하나님의 상징으로 그들 앞에 세움으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위험에 처하도록 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여로보암은 최근에 애굽에 거주했었는데 그것이 그로 하여금 백성들 앞에 이와 같은 이교의 조상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배우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북방 지파들이 매년 거룩한 성읍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려는 단호한 의도가 그로 하여금 가장 경솔한 방법을 채택하도록 했다. 그는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왕상 12:28)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금 우상 앞에서 절하고 생소한 형태의 예배 의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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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그의 영토 안에 살고 있는 레위 사람들을 권고하여 벧엘과 단에 건축된 사당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하려 하였으나 이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고로 그는 할 수 없이 “보통 백성으로”(왕상 12:31) 제사장을 삼았다. 이러한 광경에 놀란 충성스러운 많은 사람들은 대다수의 레위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요구에 일치하게 예배할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왕상 12:32).
거룩하게 제정된 제도를 이처럼 무시하는 하나님께 대한 왕의 대담한 도전은 견책을 피할 수 없었다. 바로 그가 벧엘에 세운 이상한 제단의 낙성식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도입한 방자함을 탄핵하기 위하여 유다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보내심을 입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 선지자는 “단을 향하여…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다.
“그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였다. 즉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왕상 13:2, 3, 5)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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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적인 정신이 가득하여 그 기별을 전달한 사람을 잡아 가두려고 하였다. 분노한 그는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성급한 행위는 즉시 견책을 받았다. 여호와의 사자를 향하여 펼친 손은 돌연히 힘이 없어지고 시들게 되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었다.
왕은 공포에 사로잡혀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재해 주도록 선지자에게 애원하였다. 왕은 탄원하기를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왕상 13:4, 6)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을 무시하려고 생소한 제단의 낙성식을 엄숙히 거행하려 했던 여로보암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이스라엘 왕은 선지자의 기별을 듣고 회개하는 동시에 백성들로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에서 떠나게 하려던 자기의 악한 목적을 버려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굳게 하고 자신의 택한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벧엘에서 축제를 지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완전히 굳어지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감화에 민감했다. 주께서는 배도를 향해 빠른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자들의 행동을 너무 늦기 전에 막고자 계획하셨다. 주께서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막고 그 같은 배도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왕과 백성에게 보이시려고 당신의 사자를 보내셨다. 제단이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에서 행하여진 가증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신다는 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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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구원하려 하시지 멸하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인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겔 33:11)노라. 주께서는 경고와 간청으로 불순종하는 무리들에게 그들의 행악을 그치고 당신께 돌아와서 살라고 부르신다. 주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사자들에게 거룩한 담력을 주셔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회개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얼마나 단호하게 왕을 꾸짖었는가! 이 단호함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으며 다른 방법으로는 이미 시작된 그 악이 견책을 받을 길이 없었다. 주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담대함을 주셔서 듣는 사람들에게 영구적인 감명을 끼칠 수 있게 하셨다. 여호와의 사자들은 결코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의를 위하여 굳게 서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또한 보호하시겠다는 보증을 주신 까닭이다.
선지자가 기별을 전달한 후에 돌아가려고 할 때에 여로보암은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고 말하였다. 선지자는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다”(왕상 13:7~9)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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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다음 지체 없이 유다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길을 따라 집을 향해 가는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노인이 뒤따라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라 하였”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거듭거듭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함께 가기를 간청함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은 설복되어 되돌아갔다.
참 선지자가 의무의 길에 상반되는 행동을 한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자기의 잘못에 대한 형벌을 받도록 허락하셨다. 그와 그를 초청한 노인이 벧엘에 돌아와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전능하신 이의 영감이 거짓 선지자에게 임하여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니)…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3:18~22).
이 비운의 예언은 곧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와서 말한지라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왕상 13:23~26)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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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충실한 사자에게 임한 형벌은 제단에 대해 말한 예언의 진실성을 한층 더 증거 하였다. 만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불순종한 후에도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허락되었다면 왕은 이 사실을 자신의 불순종을 변명하는 데 사용하였을 것이다. 갈라진 제단과 마비된 팔과 감히 여호와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한 자에게 내린 무서운 운명에서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신속하게 나타내신 신속한 불쾌함을 분별해야 했고 이 형벌들은 그에게 행악을 고집하지 말라는 경고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회개하기는커녕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다. 이리하여 여로보암은 자기 자신이 크게 범죄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고, “이 일이 여로보암의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왕상 13:33, 34, 14:16).
여로보암은 22년간의 거친 통치의 말기에 르호보암의 후계자 아비야와의 전쟁에서 비참한 패배를 당하였다.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대하 13:20)다.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 중에 들어온 배도는 더욱 현저하게 되어 마침내 이스라엘 나라의 완전한 멸망을 초래하였다. 여러 해 전에 여로보암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한 실로에 사는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이 죽기 전인데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 14:15, 16)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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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와 충성하도록 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기까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연달아 일어난 통치자들이 대담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로 더욱 깊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던 길고 어두운 세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뒤로 물러간 당신의 백성에게 연달아 기별을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이 배도의 물결을 멈추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기회를 주셨다. 나라가 분열된 후의 세월 동안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했고 호세아와 아모스와 오바댜의 부드러운 호소를 나라 안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에 대한 훌륭한 증인들을 보내지 않고 버려둔 적은 결코 없었다. 최악의 암흑시대 동안에도 거룩하신 통치자에게 충성을 다하고 우상숭배 중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흠 없이 살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상당수의 남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로 계수되었는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도록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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