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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황제를 뵙기로 지정된 시간이 왔다. 보좌에 앉은 카알 5세는 각 선후와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프로테스탄트”에 속한 개혁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혁자들의 신앙 고백서가 낭독되었다. 그 엄숙한 집회에서 복음의 진리는 밝혀지고 로마 교회의 오류들은 지적되었다. 이날을 “개혁 사업의 가장 큰 날, 그리스도교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 (D’Aubigne, b.14, ch.7) 이라고 일컫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비텐베르크의 승려 (루터를 가리키는 말임-역자 주) 가 보름스의 국회 앞에 홀로 섰던 때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를 대신하여 그 나라의 가장 귀하고 유력한 제후들이 서 있었다. 루터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출두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말과 기도로써 거기 참석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그처럼 유명한 신앙 고백자들과 영광스러운 집회에서 그리스도께서 공공연하게 높임을 받은 이 시간까지 살아 있는 것을 넘치는 기쁨으로 생각한다” (D’Aubigne, b.14, ch.7). 그리하여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시 119:46)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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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시대에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지만 그 복음이 로마 제국의 제후들과 귀족들 앞에 제시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황제의 명령으로 강단에서는 설교할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었으나 왕궁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들조차 듣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 오던 것을 국가의 군주들과 고관들이 경탄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왕들과 위대한 사람들이 청중이 되고, 권위 있는 제후들이 설교자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설교하였다. “사도 시대 이래로 이보다 더 위대한 사업과 이보다 더 훌륭한 신앙 고백이 있었던 적은 없다” (D’Aubigne, b.14, ch.7) 고 어떤 저술가는 기록하였다.
“루터파에서 말한 것은 모두 옳다. 우리는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법왕당의 한 감독은 말하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에크 박사에게 “선후 (選侯) 와 그의 동료들이 작성한 신앙 고백서에 대하여 건전한 논리를 가지고 반박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을 가지고는 할 수 없으나 교부 (敎父) 들과 회의의 기록을 가지고는 할 수 있다” (D’Aubigne, b.14, ch.8) 고 대답하였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그러면 당신의 견해에 의하면 루터파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고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인 줄 알겠다”고 대답하였다.
독일의 제후 중 몇 사람들이 개혁파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황제도 개혁파의 신조들이 진리인 것을 친히 선언하였다. 그 신앙 고백서는 각국의 말로 번역되어 전 구라파에 보급되었다. 그 후 여러 시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들의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홀로 수고하지 않았다. “정사 (政事) 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연합하여 그들을 대항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만일 그들의 눈이 열릴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옛날의 한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분의 도우심의 분명한 증거를 보았을 것이다. 엘리사의 종이 그의 주인에게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적군들과 도망할 모든 기회가 끊어진 것을 지적했을 때 그 선지자는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왕하 6:17) 라고 기도하였다. 그 때에 그 산은 불말과 불병거로 가득 차 있었고 하늘의 군사가 하나님의 사람을 둘러 진 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천사들은 개혁 사업에 종사하는 역군들을 지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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