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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로, 파리는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또 다른 초청을 받게 될 것이었다. 러페브르와 파렐의 호소는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다시 그 기별은 이 큰 도시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할 것이었다. 프란시스 왕은 정치적 영향 때문에 아직 개혁주의를 대항하여 로마의 편에 완전히 가담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누이 마가레트는 개혁주의가 프랑스에서 승리를 얻어야 한다는 희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개혁주의를 파리에 선포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왕의 부재시에, 그는 개혁파의 한 목사에게 파리의 여러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하였다. 이와 같은 일이 법왕의 당국자들에 의하여 금지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는 왕궁을 공개하였다. 그는 그 일부를 개조 (改造) 하여 강당을 만들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설교를 하도록 하고, 계급과 지위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참석하도록 광고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예배에 참석했다. 강당뿐 아니라 그 근방의 방들까지도 사람들로 꽉 찼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거기에는 귀족, 정치가, 법률가, 상인, 직공들까지도 있었다. 왕은 이와 같은 집회를 금지하는 대신에 파리 시내의 두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집회를 열도록 명령하였다. 시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찍이 받아보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 하늘에서 온 생명의 기운이 사람들에게 들어간 것 같았다. 술 취함과 방탕함과 투쟁과 게으름이 절제와 순결과 질서와 근면으로 바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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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직자 계급에서는 가만있지 않았다. 왕은 여전히 복음 전도를 중단시키는 일에 간섭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에게로 방향을 돌렸다. 무지하고 미신적인 많은 무리에게 공포와 편견과 광신을 일으키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고 사용하였다. 거짓 교사들에게 맹종한 파리는 옛날의 예루살렘과 같이 그들의 심판의 날도 알지 못하였고, 평강에 속한 일도 알지 못하였다.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은 파리에서 전파되었다. 그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백성들 중의 대다수는 거절하였다. 프란시스 왕은 단순히 자기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개혁주의를 허용하였으므로, 법왕측이 다시 권세를 회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다시 폐쇄되고, 화형주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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