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히스기야왕은 그의 통치 황금기에 갑자기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 “병들어 죽게 된” 그의 처지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울 수 없었다.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사 38:1)라는 기별을 가지고 그의 앞에 나타났을 때에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전망은 아주 어두운 것처럼 보였으나 왕은 여전히 그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시 46:1)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였다.
-341-
다윗의 시대 이래 배도와 낙담의 때에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힘있게 일한 왕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죽어가는 통치자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겼고 저희의 최고의 통치자로서 여호와를 신뢰하도록 백성의 믿음을 굳게 하였었다. 이제 그는 다윗처럼 호소할 수 있었다.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사오니” (시 88:2, 3).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내가…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하나님이여…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 71:5, 6, 9, 12, 18).
그 “긍휼이 무궁하신”(애 3:22)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의 기도를 들으셨다.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여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왕하 20:4~6)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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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기쁨으로 보증과 희망의 말을 가지고 돌아왔다. 무화과 반죽을 그 종처에 놓으라는 지시와 함께 이사야는 왕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하시고 돌보시겠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미디안 땅에서의 모세와 같이, 하늘의 사자 앞에 선 기드온과 같이, 그의 주인의 승천 직전의 엘리사와 같이 히스기야는 그 기별이 하늘에서 왔는지의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징조를 간청하였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하고 물었다.
선지자는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였다. “그림자가 십도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라고 히스기야는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써만 해시계 위의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게 할 수 있었고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히스기야에게 알리는 징조가 될 것이었다. “선지자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왕하 20:8~11)다.
평소의 힘을 되찾은 유다 왕은 가사(歌詞)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고백하고 여생을 만왕의 왕을 자원하여 봉사하는 데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다루셨음을 감사하는 히스기야의 고백은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생애를 바치고자 갈망하는 모든 자들에게 감명을 준다.
-343-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 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 거민 증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걸음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걸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일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사 38:10~20).
-344-
비옥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그 당시에는 앗수르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세계를 통치할 운명을 가진 고대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 백성 중에는 천문학 연구에 크게 유의하는 박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의 왕 므로닥발라단은 이것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유다 왕에게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표로서 행하신 이적임을 알고 히스기야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그의 회복에 대하여 축하하고 할 수 있는 대로 그와 같이 큰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셨던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배워오도록 하였다.
먼 나라 통치자에게서 온 이 사자들의 내방은 히스기야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를 주었다.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는 분, 다른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에 은총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한 하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야말로 히스기야에게 얼마나 쉬운 일이었을까! 만일 갈대아 평야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온 이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최상권을 승인하도록 인도함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인가!
그러나 히스기야의 마음은 교만과 허영심으로 가득 차서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탐욕의 눈을 가진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요하게 하신 보물들을 보여 주었다. 왕은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 금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였으니 궁중의 소유와 전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사 39:2)었다. 왕이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함이 아니요 외국 방백들의 목전에서 자신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왕은 이 사람들이 저희 심중에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아니하는 강대 국가의 대표자들이며 따라서 국가의 현세적 부를 그들에게 속속들이 공개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아니하였다.
-346-
히스기야에게 사자들이 내방한 것은 그의 감사와 헌신에 대한 시험이었다. 성경은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고 말한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와 긍휼을 증거하도록 그에게 주신 기회를 선용하였더라면 그 사자들의 보고는 흑암을 뚫는 빛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만군의 여호와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높였다. 그는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대하 32:25)였다.
뒤따를 결과는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돌아가는 사자들이 저희가 본부에 대한 보고를 가지고 가는 모습과 바벨론 왕과 그의 모사들이 예루살렘의 보물로 저희 나라를 부요하게 할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이사야에게 나타났다. 히스기야가 크게 범죄한고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대하 32:25)다.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정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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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사 39:3~8).
후회로 충만한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대하 32:26)였다. 그러나 악의 씨앗이 이미 심어졌으므로 때가 이르면 자라나서 폐허와 비애를 거둘 것이다. 그의 남은 세월 동안 유다왕은 과거를 속하고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려는 확고부동한 목적으로 인하여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의 믿음은 격렬하게 연단을 받아야 하였다. 그는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함으로써만 자신의 파멸과 자기의 백성의 완전한 멸망을 음모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사자들이 내방하였을 때에 자기 임무에 충실함을 보여 주지 못한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대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애와 비할 데 없이 깊은 구주의 사랑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들을 말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영적 생애와 관계있는 것들을 나누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보고의 특징이 되는 위대한 사상, 고상한 포부, 진리에 대한 분명한 지각, 이기심 없는 목적, 경건과 신성에 대한 열망이 말로 표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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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과 지도가 필요하다. 때에 합당한 한마디 말은 적절한 곳에 박힌 하나의 못처럼 그들의 마음에 박히게 될 것이다. 내일이면 그 영혼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가 결코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동행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감화를 끼쳐야 하겠는가?
우리는 매일 매일 져야 할 책임이 있다. 날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교제하는 자들에게 감화를 끼치고 있다.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우리의 발걸음을 주의 깊게 지켜야 할 필요가 얼마나 큰가! 한 번의 무모한 움직임, 한 번의 경솔한 발걸음이 세차게 밀려오는 유혹의 파도처럼 영혼을 타락의 길로 휩쓸어갈지 모른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심은 사상들을 거두어들일 수 없다. 만일 그 사상들이 악한 것이라면 우리 힘으로 멈출 수 없는 악의 조수, 곧 환경의 열차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 반면에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본으로 다른 사람들로 선한 원칙들을 계발하도록 도와준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선을 행할 능력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차례로 그 유익한 감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게 된다. 이리하여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우리의 무의식적인 감화로 인하여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선한 목적을 굳게 한다. 그는 믿지 않고 죄악을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당신의 품성의 완전함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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