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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분께서는 당신의 발걸음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아셨으나 그분의 눈물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앞에는 겟세마네 곧 다가오는 고뇌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여러 세기 동안에 번제 드릴 양들이 지나간 문, 이제는 또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사 53:7) 이신 그분께서 지나갈 양문도 보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장소인 갈바리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래지 않아서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실 그 길 위에는 장차 당신의 영혼이 속죄 제물로 드려질 때에 무서운 큰 암흑이 임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즐거운 때에 그분의 마음을 어둡게 한 것은 이런 장면들을 명상함으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미치리라고 예상되는 초인간적인 고뇌도 그분의 무아 (無我) 의 정신에 구름이 끼게 할 수는 없었다. 그분께서는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예루살렘의 무수한 백성들을 위하여 우셨다. 곧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 백성들의 무지와 고집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눈앞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보호를 입은 택한 백성들의 천여 년간의 역사가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언약의 아들이 아무런 반항 없이 제물로서 제단에 묶이어 있던 모리아 산이 보였다. 이곳이야말로 축복의 언약, 곧 메시야에 대한 영광스러운 허락이 믿음의 조상에게 확증되었던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죄인을 위한 구주의 희생과 중보를 적절히 상징하는 번제의 불꽃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그 멸망시키는 천사의 검을 제지시킨 곳이다 (대상 21장 참조). 예루살렘은 세상의 어떤 곳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 많이 입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시 132:13) 하셨다. 그 곳은 여러 시대 동안에 거룩한 선지자들이 경고의 기별을 전한 곳이요, 제사장들이 향로를 가지고 분향하던 곳이요, 향연이 예배하는 자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상달되던 곳이었다. 그 곳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상징하는 어린양을 잡아 날마다 그 피를 드리던 곳이요, 여호와께서 속죄소 위에 있는 영광의 구름으로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던 곳이었다. 그 곳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그 위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이 세상에 열어 준 신비로운 사다리가 놓여 있던 곳이다 (창 28:12; 요 1:51 참조).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었더라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택한 곳으로 영원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은총 받은 백성의 역사가 배교와 반역의 기록으로 점철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그들의 특권을 남용하고 그들의 기회를 경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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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 (대하 36:16) 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당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 (출 34:6) 으로 나타내셨다. 거듭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자비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계속 탄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더한 사랑으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 (대하 36:15) 셨다. 마침내 모든 권고와 경계와 견책이 허지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가장 귀한 선물을 보내 주셨는바, 그분께서는 그 하나의 선물을 통하여 하늘의 모든 것을 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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