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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개혁자가 단 한 가지 점에서라도 타협하였더라면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하는 방편이 되었고 새롭고 더욱 좋은 하나의 기원 (紀元) 을 이루어 놓았다. 신앙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바를 꺼림이 없이 그대로 실천한 이 한 사람의 감화는 그 시대의 교회와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후일의 모든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확고하고 충성된 태도는 마지막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와 동일한 경험을 갖게 될 모든 사람에게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은 사람의 의견이나 사단의 위력을 훨씬 초월한다.
얼마 후 루터는 황제의 권위에 의하여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통고가 있은 후 즉시 정죄의 선고가 내릴 것을 미리 알았다. 그의 앞길에 캄캄한 구름이 덮여 있었으나, 그는 보름스를 출발할 때 찬미와 기쁨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는 “악마 자신이 법왕의 성채 (城砦) 를 보호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한 돌파구 (突破口) 를 만들어 주셨으므로, 사단은 주께서 자기보다 더욱 위력이 있음을 마침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D’Aubigne, b.7, ch.11)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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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보름스를 떠난 후에, 자기의 확고한 태도가 반역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 종은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생사와 영욕 (榮辱) 을 물론하고 온갖 일에 가장 열심으로 폐하를 순종하는 사람인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증거하실 것입니다. 현세의 모든 일에 있어서는 종의 충성에 아무런 동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에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굴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적 문제에 있어서 굴종하는 것은 사실상 예배 행위이므로, 그것은 온전히 창조주에게만 돌려야 할 것입니다” (D’Aubigne, b.7, ch.11).
보름스에서 돌아갈 때 루터에게 나타낸 일반 사람들의 존경은 그가 올 때보다 훨씬 더 지대하였다. 고귀한 성직자들이 파문당한 그 승려를 환영하고, 높은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황제의 견책을 받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는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설교단에 올라갔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두겠다고 맹세한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Martyn, vol.1, p.420) 라고 말하였다.
그가 보름스를 떠나간 지 얼마 있지 아니하여 법왕교도들은 황제를 설득시켜 루터를 반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그 포고는 루터를 가리켜, “사단이 승려의 복장을 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D’Aubigne, b.7, ch.11) 고까지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행권의 기한이 만료되는 즉시로 그의 사업을 종식시킬 조처를 취하도록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도 그를 보호하거나, 음식물을 주거나, 공사 (公私) 를 불문하고 말로나 행동으로 그를 응원하거나 도와주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그를 발견하는 대로 체포하여 관헌의 손에 넘겨주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옥에 가두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은 없애 버리도록 되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이 포고를 위반하는 자는 모두 위에 기록한 바와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고시 (告示) 되었다. 작센의 선후와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여러 제후들은 그가 출발한 후에 곧 보름스를 떠났으므로, 황제의 이 고시는 의회의 찬동을 얻었다. 법왕교도들은 개가를 불렀다. 그들은 개혁 사업의 운명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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