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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위급한 시기에 당신의 종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셨다. 루터의 운동에 대하여 일각도 방심하지 않고, 그를 구원하려고 결심한 진실하고 고결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로마는 루터를 죽이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그를 사자의 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숨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후에게 개혁자를 보호할 계획을 세우도록 지혜를 주셨다. 성실한 친구들의 협력 아래, 선후 (選侯) 의 계획은 실행되었다. 그리하여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루터는 원수들과 친구들로부터 숨겨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체포되어, 동행자들과 분리되었고, 급히 산림을 통과하여 인가에서 떨어져 있는 산성 바르트부르크 (Wartburg) 로 끌려갔다. 그의 체포와 은닉 (隱匿) 은 너무도 비밀리에 실행되었으므로, 프리드리히 후까지도 오랫동안 그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선후 (選侯) 자신까지도 알지 못하도록 된 것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선후가 루터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한 그 일을 누설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후는 개혁자가 반드시 안전히 숨겨 있을 줄만 알고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가고 드디어 겨울이 왔다.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사로잡힌 몸으로 남아 있었다. 알리안더와 그 일당은 복음의 빛이 벌써 거의 소멸되었다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로 개혁자는 진리의 창고에서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등불은 더욱더 밝히 비추어질 것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의 조용하고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동안 싸움의 소요와 열화 (熱火) 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조용하고 평안한 처지에서 오랫동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활동적 생애와 격렬한 투쟁 (鬪爭) 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활동하지 않고 지내기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처럼 고독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 교회의 형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는 “아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끝 날에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 앞에 성벽이 되어 줄 것인가!” (D’Aubigne, b.9, ch.2) 라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장소에서 몸을 피하여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보고, 비겁한 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는 일 없이 게으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를 책망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한 사람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일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그의 붓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원수들은 루터를 침묵케 하였다고 기뻐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소책자가 그로 말미암아 저술되어 독일 전국에 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일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함으로 자기 나라의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봉사를 하였다. 그는 거의 1년 동안 바위투성이인 그의 “밧모섬”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 시대의 오류와 죄악을 견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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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공생애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신 것은 루터로 하여금 원수들의 분노를 피하게 하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에게 그처럼 중대한 사업을 맡기시기 위하여 조용한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한 것만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거두어야 할 더욱 귀중한 결과가 있었다. 한적하고 격리된 산장 (山莊) 에 있으므로 루터는 세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칭찬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공에 흔히 따르는 자부심과 교만으로부터 구제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고난과 겸비를 통하여, 그가 갑자기 높임을 받으므로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진리가 전해짐으로 자유를 경험하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류와 미신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사용하신 그 인물들을 찬탄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다. 사단은 사람들의 사상과 애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사람을 바라보게 함으로 도구에 불과한 사람들을 높이 우러러보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온갖 사건의 배후에서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무시해 버리도록 한다. 이런 경우에 흔히 칭찬과 존경을 받는 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지도를 받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탐구하지 않고, 지도자들을 바라보게 되며,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양심을 지배하고자 애쓰게 된다. 개혁 사업의 지지자들이 이와 같은 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개혁 사업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험에서 개혁 사업을 보호하고자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은 그 사업이 사람의 사업이 아니고 당신의 사업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하신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루터를 진리의 해석자로 주목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눈을 진리의 영원한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여 그를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도록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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