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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당국자들은 츠빙글리가 하고 있는 일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간섭하기를 피했다. 그들은 그를 그들의 편에 머물러 두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아첨하는 말로써 그의 마음을 사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진리는 더욱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아인지델른에서의 츠빙글리의 활동은 넓은 분야의 사업을 위하여 그를 준비시켜 주었다. 오래지 않아서 그는 그 일에 착수할 것이었다. 3년 후에 그는 취리히 (Zurich) 대성당의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취리히는 그 당시 스위스 연방 (聯邦) 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으므로 여기에서 나타내는 영향력은 멀리까지 미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를 취리히로 초대한 교직 (敎職) 들은 혁신적인 교리가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츠빙글리의 의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였다.
“그대는 가장 적은 액수의 연금이라도 이를 등한히 여기지 말고 교회의 수입으로 삼는 일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대는 강단에서나 참회소에서나 신도들에게 그들의 십일조와 그밖의 회비를 드리도록 장려함으로 연금으로써 그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도록 하라. 그대는 병자들이 드리는 연금이나 미사와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할 때에 드리는 모든 연금으로써 수입을 증가시키는 일에 열심을 다하라. 의식을 행하는 것과 설교를 하는 것, 교인들을 돌보는 것 등은 목사의 직무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그 일을 전담한 목사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은 그에게 맡기되, 특히 설교 같은 것은 대리자에게 위탁하는 것이 좋다. 그대는 다만 지위와 명망이 있는 자들에게만 의식을 집행하되, 의뢰할 때에만 이를 행하고 아무에게나 차별 없이 해서는 안 된다” (D’Aubigne, b.8, ch.6).
츠빙글리는 잠잠히 자기의 책무에 대하여 들은 후에, 먼저 이러한 중요한 위치에 부름을 받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감사의 말을 하고, 다음에 그가 취할 방침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매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서 감추어졌다. 그러므로 나는 마태복음을 전부 설교의 재료로 삼되…거룩한 말씀의 샘에서 온전히 이를 길어내고, 그 깊이를 측정하면서 절들을 서로 비교하여 이해하기 위하여 항상 열심으로 기도할 생각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독생자를 찬양하고, 영혼들의 참된 구원을 위하여 일하고, 저들의 참 신앙 안에 굳게 서도록 해주기 위하여 나는 성직에 헌신할 것이다” (D’Aubigne, b.8, ch.6). 비록 성직자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의 계획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강권하였지만, 츠빙글리는 단호하게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어떤 새로운 방침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고 보다 순결하던 초창기의 교회에서 이미 실천했던 옛 방침을 따르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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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가 가르친 진리에 대한 흥미가 생겼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몰려왔다. 청중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하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복음서를 펴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과 죽음에 대한 영감적인 이야기를 읽어 주고 설명해 주는 것으로 봉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아인지델른에서 한 것과 같이 여기에서도 성경 말씀만이 그릇됨이 없는 유일한 권위의 말씀이며,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완전한 희생이라고 강조하였다. “나는 그대들을 참된 구원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그리스도께로만 인도하는 일을 원한다” (D’Aubigne, b.8, ch.6) 고 그는 말하였다. 그 설교자의 주위에는 정치가들과 학자들로부터 기술자와 농부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깊은 흥미를 가지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값없이 받을 수 있는 구원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죄악과 부패에 대하여 기탄없이 견책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성당에서 돌아갔다. 그들은 “그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를 애굽의 암흑에서 인도해 낼 우리의 모세가 될 것이다” (D’Aubigne, b.8, ch.6)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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