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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교권주의

처음에는 그의 활동이 크게 환영을 받았으나, 얼마 후에는 반대가 일어났다. 승려들은 그의 사업을 방해하고 그의 교훈을 정죄하기로 작정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조소와 비난으로 그를 공격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무례한 말과 협박으로 그를 대하였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모든 일을 인내하면서 “우리가 악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면 여러 가지 일에 눈을 감지 않으면 안 된다” (D’Aubigne, b.8, ch.6)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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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개혁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한 사람이 들어 왔다. 바젤에 있는 개혁 신앙을 가진 한 친구에 의하여 루시안 (Lucian) 의 한 사람이 루터의 저서 몇 권을 가지고 취리히로 파송되었다. 그를 보낸 친구는 그 책들을 파는 것이 복음의 빛을 전하는 데 유력한 방편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츠빙글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이 사람의 신중하고 슬기로운 마음에 대하여는 제가 보증합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견해가 저와 같다면 그로 하여금 루터의 저서를 가지고 온 스위스 나라의 도시와 읍과 촌락을 방문하되, 집집마다 빠짐없이 방문하게 하고, 책은 특별히 일반 백성들을 위하여 저술한 ‘주의 기도문의 주해’가 적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더 많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그들은 더욱 많이 사게 될 것입니다” (D’Aubigne, b.8, ch.6).

하나님께서 무지와 미신의 속박을 깨뜨리고자 준비하고 계시는 바로 그 때에, 사단은 사람들을 암흑 가운데 묻어 두고, 그들의 속박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하여 더욱 큰 힘으로 일하였다. 사람들이 여러 같지 아니한 곳에서 일어나서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사유와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을 때 로마교는 모든 그리스도교국에서 새로운 능력으로 거래소를 열고, 면죄부를 팔기 시작하였다.

모든 죄는 그 값이 정해져 있었으며, 교회의 금고만 채워진다면 사람들은 자유롭게 범죄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 운동이 전개되었다. 하나는 돈을 받고 죄를 용서하여 준다는 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해 준다는 운동이었다. 로마교는 죄를 인허해 줌으로 자기들의 재원 (財源) 이 늘어났고, 개혁자들은 죄를 견책함으로 그리스도를 속죄주와 구주로 지적하였다.

독일에서는 면죄부의 판매가 도미니크회 승려들에게 위탁되어 테첼 (Tetzel) 이라는 평판 나쁜 사람으로 말미암아 행해졌다. 그러나 스위스에서는 그 일을 이탈리아의 승려 삼손 (Samson) 이라는 자의 지휘 아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주관하였다. 삼손은 독일과 스위스에서 막대한 금품을 모집하여 법왕의 금고를 채워 줌으로써 교회를 위하여 이미 큰 공적을 나타낸 사람이었다. 그는 스위스를 순회하면서 많은 군중을 모았는데, 빈궁한 농민들로부터는 애써 벌어놓은 적은 돈을 빼앗았고, 부요한 계급의 사람들로부터는 거액의 금전을 착취하였다. 비록 종교 개혁의 영향이 이러한 부당한 매매를 정지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벌써 그 수입을 적지 않게 감소시켰다. 츠빙글리가 아직 아인지델른에 있을 때에 삼손은 스위스로 들어왔으며, 그는 곧 면죄부를 가지고 이웃 고을까지 접근해 왔다. 그 소문을 듣고, 개혁자는 그 일을 반대하기 위하여 곧 떠났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 승려의 거짓을 폭로하여 그로 하여금 다른 지방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함으로 츠빙글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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