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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는 취리히에서 면죄부의 판매인을 반대하여 열렬하게 설교하였다. 삼손이 읍 가까운 곳까지 왔을 때에 의회에서 한 사자를 보내어 그가 물러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략을 써서 마침내 그 곳에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한 장의 면죄부도 팔지 못하고 퇴거당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곧 스위스를 떠나갔다.
1519년에 스위스의 전국을 휩쓴 큰 역병은 개혁 사업을 촉진 (促進)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이러한 두려운 질병에 직면하게 되자, 그들은 얼마 전에 저들이 사 둔 면죄부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실제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욱 확실한 신앙의 토대를 갈망하게 되었다. 취리히에서 츠빙글리는 병에 걸려 거의 회복될 가망이 없을 만큼 위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츠빙글리는 희망과 용기를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믿음으로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았으며, 죄의 값을 완전히 갚아 주실 것을 신뢰하였다. 사경 (死境) 에서 회복되자 그는 전에 없던 열성으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의 말에는 비상한 능력이 있었다. 존경하는 목자가 거의 죽을 뻔하였다가 회복되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기쁨으로 맞이하였다. 그들은 병자들을 간호하거나 죽은 자들의 곁에 서 있기도 하였으므로, 이전보다 복음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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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츠빙글리는 복음의 진리를 한층 더 분명히 이해하고, 새롭게 하여 주시는 그 능력을 스스로 완전히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인류의 타락과 구속의 계획은 그가 몰두하여 연구하는 제목이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죽었고, 타락과 정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Wylie, b.8, ch.9).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원한 속량으로 우리를 사셨다. …그분의 수난은…영원한 희생이요…또한 우리를 고쳐 주시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굳게 서서 움직이지 않는 믿음으로 그분을 의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영원히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죄를 계속적으로 범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 가르쳤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신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반드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하도록 강권하고 강요하는 열심이 있다” (D’Aubigne, b.8, ch.9).
츠빙글리의 설교는 매우 흥미로웠으므로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무리들로 그 큰 성당은 언제나 가득하였다. 그는 청중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들을 놀라게 하거나 편견을 일으킬 점을 가르치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였다. 그의 일은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로 이끌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저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그리스도의 모본을 저들 앞에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복음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가졌던 미신적인 신앙을 자연히 내어 버리도록 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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