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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당의 사람들은 예상된 승리에 들떠서 찬란한 보석과 주옥 (珠玉) 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의기양양하게 바덴으로 왔다. 그들의 식탁 위에는 극히 값진 술과 온갖 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주연과 환락으로 성직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경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개혁파들은 사람들에게 걸인의 무리와도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보였으며, 그 식사도 너무나 보잘것없었으므로 식탁에 오래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에콜람파디우스의 여관집 주인은 언제 보든지 그가 자기 방에서 연구를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고, 참으로 이상하게 여겼으며, 무의식중에 그 이단자는 매우 “근엄하고 경건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회의장에서 “에크는 거만하게 강단으로 올라갔으나, 겸손한 에콜람파디우스는 검소한 의복을 입고 에크의 앞에 있는 변변치 않은 걸상에 앉았다.” (D’Aubigne, b.11, ch.13). 에크는 소리를 지르면서 오만 불손한 태도를 계속하였다. 에크는 로마의 신앙을 옹호하는 데 성공하면 막대한 상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므로, 그의 열성은 그 명예욕과 금전욕에 자극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토론에 실패하게 되면, 그는 조롱과 모멸 (侮蔑) 을 퍼붓고 저주까지 하였다.
에콜람파디우스는 신중한 태도로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논쟁을 피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어떠한 심판의 표준도 시인할 수 없다” (D’Aubigne, b.11, ch.13) 는 엄숙한 말로 토론에 들어갔다. 비록 에콜람파디우스는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를 가졌지만, 그는 유능하고 굴하지 않는다는 것이 스스로 입증되었다. 로마 교도들은 그들의 상투 수단으로 교회의 권위와 관련에 의하여 호소하였으나 개혁자는 성경을 굳게 고수하였다. “우리 스위스에서는 헌법에 일치되지 않는 한 관습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런데 신앙에 있어서는 성경이 우리의 헌법이다” (D’Aubigne, b.11, ch.13) 라고 그는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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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토론자의 대조적인 모습은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신중하고 온유한 태도로 순순히 말하는 개혁자의 분명하고 조용한 논조는 에크의 거만하고 시끄러운 억설에 혐오감을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었다.
그 토론은 18 일간 계속되었다. 그 토론이 마칠 때 법왕당은 그들이 승리한 것으로 확신하고 그 사실을 주장했다. 토론자들의 대부분은 로마 편이었다. 의회는 개혁파의 패배를 선언함과 동시에 개혁파의 무리는 그들의 지도자 츠빙글리와 함께 교회에서 끊어졌다고 포고하였다. 그러나 회의의 결과는 어느 편이 유리하였는지 보여 주었다. 그 토론의 결과로 개신교의 사업이 더욱 강해져서 미구에 베른과 바젤 두 주요한 도시가 개혁 사업을 지지한다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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